손정목 교수 "1970년 롯데껌 파동 날 롯데재벌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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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목 교수 "1970년 롯데껌 파동 날 롯데재벌 탄생"
  • 윤경숙 기자
  • 승인 2015.08.05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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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포스트=윤경숙 기자]     "1970년 11월13일, 신격호에게는 운명의 날이었다. 롯데껌이 불량 식품으로 판정되는 수모의 날이었지만 한국에서 '롯데재벌' 탄생이 결정되는 날이기도 했다."

1970년대 서울시 도시계획을 총괄했던 손정목(88) 서울시립대 명예교수의 대표 저서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가 롯데가의 경영권분쟁을 계기로 주목을 받는다. 손 교수는 이 책에서 약 100쪽을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과 을지로 롯데타운 형성과정을 설명하는 데 할애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3일 귀국 직후 부친 신격호 총괄회장과 5분간 면담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신 총괄회장의 집무실이 있는 소공동 롯데호텔 34층(가운데층) 대부분의 불이 꺼져있다.

2003년 총 5권으로 발간된 이 책은 한국전쟁 이후의 서울 도시개발 이야기를 다뤘다.  경북 경주 출신의 손 교수는 1970년 이후 서울특별시 기획관리관, 도시계획국장, 내무국장 등을 역임했다. 그러나 당시 구자춘 서울시장 등과 잦은 갈등을 빚다가 공무원교육원장으로 좌천돼 약 2년간 근무했다. 1977년에는 서울시립대학(당시 서울산업대학) 부교수로 옮겼다. 한때 서울시의 제 2인자로 불릴 정도로 출세가도를 달린 그는 캠퍼스에서는 개발독재를 비판하는 데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이었던 손 교수는 롯데제과 껌에서 쇳가루가 검출돼 제조 정지 명령이 내려진 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신 회장을 청와대로 불러들여 그 자리에서 롯데껌 파동을 '조치'해주며 호텔롯데를 지어 경영해달라고 부탁했다고 저서에 적었다.

또, 양택식 전 서울시장과 함께 김종필 전 총리에게 불려가 호텔롯데 건설에 모든 지원을 아끼지 말 것을 지시받았다고 했다.  그는 "신격호는 일본인과 다름없어 그의 재산 대부분이 당연히 일본에 귀속될 처지에 있었고 한국정부 입장에선 그의 막대한 재산 일부만이라도 모국에 투자하게 하고 부동산 상태로 남겨두게 하려는 속셈이었다"고 설명했다.  이후 호텔롯데 건설은 일사천리로 이뤄졌으며 각종 지원이 뒤따랐다고 회고했다.

호텔롯데 건립은 1938년 개업한 반도호텔을 인수하면서 본격화했다. 반도호텔 민영화 계획이 발표되면서 1974년 정부는 일반 공개경쟁입찰을 벌였고, 호텔롯데가 단독 응찰해 42억원에 낙찰받았다. 이 때문에 소공동에 있던 국립중앙도서관은 남산어린이회관으로 옮겨야 했다. 국립도서관은 호텔롯데에 매각하라는 윗선의 지시가 떨어진 결과라는 게 손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교통편이 나빠 어린이들이 올라갈 수 없었던 남산에 어린이회관을 짓게 한 일, 그것을 국립도서관에 강제로 인수시킨 일, 도서관을 롯데에 매각하라고 지시한 일이 모두 어이없었지만, 시민은 전혀 몰랐다"고 전했다.

사업자와 서울시장만 합의하면 재개발사업보다 더 강력하게 건축행위를 할 수 있었던 당시에 서울시는 호텔 부지 일대를 '특정가구정비지구'로 지정했다. 이 덕분에 롯데는 동국제강, 아서원, 반도호텔, 국립도서관, 반도조선아케이드, 민간부지를 모두 사들였다.

외자도입법의 혜택을 받아 신격호 회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호텔롯데 설립추진위원회가 발족했다.  외자도입법은 부동산취득세와 재산세, 소득세, 법인세 5년간 면제와 이후 3년간 절반 면제, 관세와 물품세 영구 면제 등 혜택을 담고 있었다.  신 회장은 한국 국적자였지만 일본에 10년 이상 영주해 외자도입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었다. 호텔롯데는 엄청난 부동산을 취득했음에도 부동산취득세와 재산세를 낼 필요가 없었다.  호텔과 백화점을 짓는 데 쓰인 외국제품과 주방·가전용구 등 모든 물품을 비품·장치용으로 보고해 관세도 물품세도 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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