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포켓몬 고’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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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포켓몬 고’의 사회학
  • 김정숙 기자
  • 승인 2017.02.27 2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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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포스트 김정숙 기자]잠시나마 현실을 떠나 판타지 속에 살고 싶어서일까. 24일로 한국 출시 한 달을 맞은 모바일 위치기반 증강현실(AR) 게임 ‘포켓몬 고’에 대한 관심이 여전하다.

앱 분석업체 와이즈앱에 따르면 포켓몬 고는 지난 1월 24일 국내에서 서비스를 시작한지 일주일 만에 700만에 육박하는 다운로드 건수를 기록하며 폭발적 인기를 얻었다. 포켓몬 고 사용자수는 한 달이 지난 지금은 20% 가량 줄어들어 다소 주춤한 모양새지만 다른 모바일 게임 이용자 수에 비하면 여전히 압도적이다.

포켓몬 고는 지난해 7월 미국 등 해외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국내에서는 강원도 속초 등 일부 지역에서만 게임이 가능했음에도 100만 건이 넘는 다운로드를 기록하며 돌풍을 일으킨 바 있다. 당시 속초 지역의 공원이나 역사 주변, 사찰 등은 ‘포켓몬 고 성지’로 불리기도 했다. 서비스가 제한된 탓에 열기는 이내 사그라지는 듯했지만 정식 서비스가 개시되자 다시 불이 붙은 것이다.

포켓몬 고 열풍에는 물론 ‘포켓몬스터’라는 이름난 콘텐츠의 힘이 큰 몫을 했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이 게임이 세계적 이목을 끌게 된 것은 증강현실이라는 기술적 요소 때문이다.

증강현실이란 용어 자체만을 놓고 보면 가상현실(VR)보다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 말의 탄생 배경을 알고 보면 증강현실이 리얼리티, 즉 현실에 대한 새로운 개념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조종사들은 야간비행을 할 때 현실과는 다른 착시현상을 일으켜 바다를 하늘로 착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 위험을 막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현실(reality)을 증강(augmented)해 보여주거나 현실의 보이지 않는 부분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이런 맥락에서 1990년 미국 보잉사의 토머스 코델은 증강현실이란 말을 처음으로 만들어 사용하게 된 것이다.

증강현실은 현실을 ‘보완’한다는 점에서 현실을 ‘대체’하는 가상현실과 구분된다. 그런 만큼 가상현실에 비해 현실감이 앞선다. 증강현실은 이처럼 현실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 우리로 하여금 현실을 보다 선명하게 인식하도록 도와준다.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런 증강현실의 미덕은 ‘게임 안’에서 뿐만 아니라 ‘게임 밖’ 현실 인식에서도 그대로 적용돼야 한다는 점이다.

포켓몬 고는 스마트폰을 보며 움직여야 하는 게임인 만큼 늘 안전사고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마침내 게임에 몰두해 교통사고가 빈발하자 도심 터널 전광판에 “포켓몬 고 스톱!”이란 경고문까지 나붙었다. 운전을 하면서도 포켓몬 사냥을 해야 하는 상황이니 포켓몬을 대신 잡아준다는 ‘포획 대행’ 알바도 등장할 만하다.

김민영의 소설 ‘팔란티어’는 현실과 게임을 분간하지 못하면 살인도 저지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증강현실 게임에 취해 바깥 현실을 온전히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문명의 재앙이다. 우리 사회가 온통 게임 신드롬에 빠져 사고가 단절되고 성찰이 불가능한 ‘좀비형’ 인간을 양산한다면 이보다 더한 불행도 없다.

게임을 즐기는 것, 그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니다. 놀이하는 존재로서의 ‘호모 루덴스’는 인간의 숙명이다. 그러나 포켓몬 고 이용자들 사이에 역세권에 빗댄 ‘포세권’이란 신조어가 유통되고, 게임 충전소 같은 구실을 하는 포켓스톱이 집중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포수저(포켓스톱+금수저)’라 부르며, 안락하게 게임하는 삶을 ‘로망’으로 여기는 풍조까지 생겼다니 씁쓸하다. 도를 넘은 게임열풍에는 필경 어떤 사회 병리적 징후가 담겨 있으리라.

증강현실은 이미 대중화 단계에 이르렀다고 할 만큼 우리 곁에 바짝 와 있다. 교육, 의료, 광고, 쇼핑 등 우리 일상 구석구석에 두루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지도를 찾아보고 위치를 검색하는 것도 다 증강현실의 범주에 든다. 앞으로는 문학작품, 특히 소설 창작에도 증강현실 개념이 적극 활용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문학의 영토가 한층 확장되는 것이다.

눈앞에 펼쳐진 증강현실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포켓몬 고 현상’은 증강현실의 빛과 그늘을 아울러 보여준다. ‘기술의 신’의 노예가 될 것인가 주인이 될 것인가. 중강현실 기술을 어떻게 선용하느냐에 우리의 미래가 달렸다.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의 어구를 잠시 빌려보자. 우리는 언제까지 포켓몬 고라는 이름의 증강현실 게임, 그 ‘환상의 돌림병’에 걸려 ‘실재하는 사막’을 보지 못할 것인가. 지금이야말로 증강현실 본연의 자리, 그 이성적 출발점에 다시 설 때다.

글쓴이: 김종면 서울여자대학교 국문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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