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시대 ‘조선로동당의 영도적 역할 약화론’ 비판
상태바
김정일 시대 ‘조선로동당의 영도적 역할 약화론’ 비판
  • 코리아포스트
  • 승인 2010.01.20 10: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정일 시대 ‘조선로동당의 영도적 역할 약화론’ 비판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김일성 사후 다수의 전문가들은 당의 ‘지도기관’인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와 정치국 회의가 열리지 않는 반면, 당의 ‘집행기관’인 비서국과 전문부서를 통해 수직적, 실무적 정책결정이 이루어지고 있어 당의 영도가 약화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들은 또한 김정일 시대에 당이 국가기관과 군대에 대해 과거와 같은 정치적 지도를 하지 못하고, 기존의 당-국가 체제가 당(黨)이 대내통합과 체제결속 상징화를 위해 정치사상적 진지를, 군(軍)이 체제보장을 위해 군사적 진지를, 정(政)이 경제발전을 위해 경제적 진지를 각각 거의 배타적으로 담당하는 권력구조로 변화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 정치에서 조선로동당의 ‘영도적 역할’을 과소평가하는 이 같은 시각은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중요한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다.


첫째, 레닌식 집단지도체제에서는 당중앙위원회 정치국이 중요한 정책결정기관이지만, 스탈린식 개인-절대 권력체계에서는 비서국이 정치국보다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스탈린은 소련공산당 총서기로서 권력의 중심을 당중앙위원회 정치국에서 비서국으로 이동시켰고, 김일성도 연안파와 소련파에 이어 갑산파까지 제거한 후 1970년 개최된 제5차 당대회에서 비서국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조치를 내렸다. 그 결과 과거 비서국은 정책집행 기능밖에 없었으나, 새로운 비서국은 “간부문제, 대내문제 및 그 밖의 당면문제를 정기적으로 토의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정책결정 권한을 가지게 된 당중앙위원회 비서국을 단순히 ‘집행기관’에 불과한 것처럼 간주하는 것은 1970년 이후 변화된 북한의 현실에 부합하지 않고, 스탈린식 개인-절대 권력체계를 가진 북한체제의 운영 방식을 설명하는 데에도 적합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둘째, 김정일이 1974년에 후계자로 결정된 후 ‘당중앙위원회 조직비서’로서 후계자의 유일적 지도체제를 구축-강화함으로써 북한에서 정치국의 영향력은 급속히 쇠퇴하고 비서국과 조직지도부가 권력의 중심이 되었다. 그러므로 정치국 회의가 빈번히 소집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당의 영도가 약화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미 1970년대 중반부터 북한의 정치체제가 ‘정치국 위주의 정책적 당-국가체제’로부터 ‘비서국과 전문부서 위주의 권력적 당-국가체제’로 변화한 사실을 간과하는 것이다.


셋째, 김정일 시대에 당이 정치사상적 진지를, 군이 군사적 진지를, 정이 경제적 진지를 각각 거의 배타적으로 담당하는 권력구조로 변화했다는 주장은 당중앙위원회가 전문부서들을 통해 군사와 경제 분야도 관장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현재 조선로동당은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와 선전선동부를 통해 북한 엘리트와 주민들의 조직과 사상 생활을 통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군사부, 민방위부, 군수공업부, 경공업부, 계획재정부, 국제부, 통일전선사업부 등을 통해 군사, 경제, 대외, 대남 정책도 관장하고 있다.
‘군사적 진지’에 대한 당의 영도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는 조선인민군 총정치국 지도과, 행정과, 간부과를 통해 북한군을 정치적으로 지도-통제하고 있다. 그리고 당중앙위원회 군사부는 북한군을 정책적, 실무적으로 지도하고 있다. 군사부는 간부들을 군 총참모부와 인민무력부의 예하 실무 부서들에 파견하여 총참모장, 인민무력부장, 작전국장 등 군령-군정권자들의 업무는 물론 그들의 일거일동을 통제한다. 또한 군사부는 당중앙군사위원회의 실무지원 부서로서 군 총참모부와 인민무력부의 정책부서들이 당이 제시한 노선과 정책, 과제에 맞게 군사전략과 전술을 수립하고 이를 철저히 집행하고 있는가를 감독한다. 한편 당중앙위원회 군수공업부는 핵무기와 미사일의 개발, 생산, 실험을 관장하고 있다. 그리고 당중앙위원회 민방위부는 고등중학교 5~6학년의 전체 남녀학생을 망라하는 예비 군사조직인 붉은청년근위대와 18세부터 60세까지의 모든 성인 남녀를 망라하는 노농적위대를 지휘한다. 이처럼 당중앙위원회의 여러 전문부서들이 ‘당의 군대’인 북한군을 정치적-정책적·실무적으로 확고하게 지도-통제하는 구조에 의미 있는 변화가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김정일 시대에 당이 정치사상적 진지를, 군이 군사적 진지를 배타적으로 담당하는 권력구조로 변화했다는 주장은 분명 성급한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김일성 사후 북한 국방위원회가 상대적으로 강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군사·안보 분야에서는 직속 기관인 인민무력부의 개편, 국가안전보위부의 비상경계 태세 발령, 민방위 및 군복무와 관련한 명령들만이 하달되고 있다. 반면 전쟁 준비, 군사훈련, 부대 관리 등 군사 분야의 핵심적인 결정은 당의 최고군사지도기관인 당중앙군사위원회에 의해 하달되고 있다. 이는 북한 국방위원회가 소련의 국방위원회, 중국의 공화국 중앙군사위원회와 마찬가지로 ‘국가기구’로서 군사 분야에서 “당과 대중을 연결시키는 가장 포괄적인 인전대” 이상의 위상과 역할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북한에서 군대를 실질적으로 지도?통제하는 최고군사지도기관은 국방위원회가 아니라 당중앙위원회와 당중앙군사위원회라고 할 수 있다. 북한 국방위원회가 비군사 분야에서도 일정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는 하지만, 최고위급 수준에서의 정책결정기구가 아니라 당의 결정을 실무적으로 집행하는 기구로 기능하고 있다.


북한은 5대 주요 권력기관들의 언급 시에 당중앙위원회, 당중앙군사위원회, 국방위원회,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내각의 순서로 호명하고 있다. 또한 북한은 공식 언론을 통해 김정일을 지칭할 때에도 여러 직책 중 당 총비서직을 가장 중요한 직책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처럼 국방위원회가 당중앙위원회와 당중앙군사위원회 다음에 언급되고 있는 점, 또한 국방위원장보다는 총비서직을 북한 언론이 더욱 중시한다는 점 등은 국방위원회의 위상이 당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반증하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당이 부분을, 국가가 전체를 의미하는 민주주의체제와는 달리 사회주의체제에서는 당이 전체를, 국가는 부분을 의미한다. 따라서 민주주의체제에서의 당을 보는 시각으로 북한의 조선로동당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하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