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에 취약해 공공의료 확충 시급한 한국의료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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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에 취약해 공공의료 확충 시급한 한국의료체계
  • 안상훈 기자
  • 승인 2015.06.18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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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포스트=안상훈 기자]  세계 최고 수준을 자부하던 우리나라 의료 체계가 새로운 감염병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여실히 드러냈다. 일선 의료진은 '메르스'라는 감염병을 전혀 알지 못했다. 제대로 안내를 받지 못한 환자들은 이 병원, 저 병원을 돌아다니며 바이러스를 퍼날랐다. 환자가 다닥다닥 붙은 병실 환경, 가족이 모이는 병문안 문화, 대형병원 응급실에 환자들이 몰려들게 한 의료전달체계 모두 이번 메르스 사태를 키운 원흉으로 지목됐다.

결국 첫 환자가 발생한 지 한 달이 못 돼 메르스 감염자 수는 세 자릿수를 돌파했다.

문제는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점이다. 비행기 한 번이면 어디든 갈 수 있는 오늘날엔 지구상 어딘가에서 새로 생겨난 감염병이 언제든 국내에 유입될 수 있다.

메르스 이후, 또다른 신종감염병의 국내 유입에 대비해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 메르스 철통같이 막은 미국…에볼라엔 쩔쩔

감염병에 대처한 미국의 사례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시사점이 작지 않다.

우리나라가 메르스 환자 한 명을 제대로 막지 못하고 뒷수습에 진땀을 뺀 것과 달리 미국은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유입된 메르스 환자 2명을 철통같이 막아냈다. 추가 감염자는 없었고, 환자 두 명 모두 완치됐다.

환자는 물론 밀접접촉자를 철저하게 격리·관리했고, 치료 병원, 환자의 동선 등 일체의 정보를 공개했다. 단, 환자의 신원 정보는 꽁꽁 감췄다.

그러나 에볼라 대응에 있어서는 미국 질병통제센터(CDC)도 허점을 노출했다.

에볼라 발병국에서 입국한 환자를 공항 검역에서 놓친 데 이어 병원에서는 그를 에볼라로 진단하는 데 이틀이나 걸렸다. 그사이 노출된 의료진 중 2명이 에볼라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뿐만 아니라 확진 판정을 받은 간호사 중 일부가 비행기로 다른 주에 이동한 사실도 밝혀졌다.

에볼라에 대한 미국인의 공포가 극에 달하고 나서야 CDC는 '컨트롤 타워'를 자임하고 사태 해결에 나섰다.

미국인을 공포로 몰아 넣은 '피어볼라' 사태가 종료되기까지는 43일이 걸렸다.

전문가들은 초기 대응의 성패가 방역의 핵심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 '3분 진료'로는 초기 방역 어렵다

건양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홍지영 교수는 "결국 감염병 환자를 최초로 진료하는 의사가 감염병을 잡아내느냐에 전체 방역의 성패가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국내 메르스 사태는 물론이고, 미국의 에볼라 역시 초기 방역에 실패하면서 사태가 커졌다는 분석이다.

최초 메르스 환자를 무방비 상태로 진료하다 메르스에 감염된 서울 한 의원의 원장은 완치 후 인터뷰에서 이전까지 메르스에 대한 정보를 전혀 들어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질병관리본부가 2013년부터 메르스에 대비하는 방역 정책 회의를 매주 열고도 관련 정보를 일선 병원에 제대로 전달하지 않은 탓이다.

때문에 그 어떤 의사가 신종 감염병 환자를 진료해도 즉시 방역 당국에 보고될 수 있도록 교육, 홍보 등 제도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환자의 상태를 간략히 묻고 약을 처방하는 방식으로 진료를 끝내는 '3분 진료'도 초기 방역 체계를 어렵게 하는 주범으로 꼽힌다.

여행력, 증상 등 감염병 확인에 필수적인 정보를 확인하려면 깊이 있는 문진이 필요한데, 국내에서는 의사뿐 아니라 환자도 3분 진료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이다.

홍지영 교수는 "미국 사례에서 메르스를 잡아내고, 에볼라를 놓친 건 결국 문진이 얼마나 세부적으로 이뤄졌느냐에서 갈린 거나 마찬가지"라며 "설령 할 말이 없어도 환자가 귀찮아 할 정도로 깊이 문진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방역망이 제대로 가동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질병 확산 부추긴 '전국구'병원

전국의 환자들이 몰려드는 이른바 '전국구' 병원 체계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대기하던 14번 환자(35)가 전국에서 몰려든 응급실 환자들에게 메르스 바이러스를 전파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응급실뿐 아니라 가족들의 문병·병간호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17일 현재 메르스 확진자 162명 가운데 문병·병간호 등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메르스에 감염된 경우가 58명(36%)에 이른다.

미국·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충분한 시설과 인력으로 대부분 환자가 1인실에서 진료를 받는다. 가족 대신 이들을 돌봐줄 간호사 인력도 충분하다.

우리나라도 이런 방향으로 정책이 수정돼야 한다는 것이 감염병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홍지영 교수는 "건강보험, 의료수가 등 얽힌 문제가 많아 단번에 정책을 개정하기는 어렵겠지만, 우리나라 병원도 결국 1인 1실의 제도를 정착하도록 방향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 교수는 "이런 방향의 정책 수정에는 건강보험료 상승이 필연적이어서 국민의 저항이 불가피하다"며 "적어도 이번 메르스 사태를 통해 국민이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공감하게 된 만큼 논의를 시작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공공의료 인프라 확충해야

민간의료 중심 의료산업 정책 속에 상대적으로 허술해진 공공의료 시스템을 손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2011년 기준 한국의 인구 1천명당 공공병상 수는 1.19개로 24개 회원국 평균의(3.25개)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메르스 감염이 의심되는 격리대상 환자가 늘어나고 있지만, 정부가 위급한 시기에 통제할 수 있는 공공병원이 많지 않고, 그나마 국공립병원에는 격리병동으로 활용할 1인실도 크게 부족하다.

이번 메르스 사태의 주요 원인이 된 병원 내 2차·3차 감염이나, 환자를 치료하던 의료진의 감염도 이런 시설 및 장비 부족과 무관하지 않은 만큼 공공 의료에 투자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전국의료산업노조는 "국내 병원에는 감염병 방지 시설이 부족하고 예방 장비도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며 "민간의료기관이 활용도가 떨어지는 격리 병상 등에 투자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공공의료 시설도 부족해 메르스처럼 전염성이 높은 질병에 대한 대응과 의료진 보호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막상 감염병 발생 이후에 작동해야 할 역학조사망이 허술해 화를 키웠다는 의견도 있다.

(코리아포스트 영문 관련 기사 : http://koreapost.koreafree.co.kr/news/view.html?section=162&category=182&no=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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