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일-김정은 권력이양 보다 정확한 분석이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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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일-김정은 권력이양 보다 정확한 분석이 필요
  • 코리아포스트
  • 승인 2009.12.08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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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성 장(鄭成長)
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연구실 수석연구위원,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정책위원장
우) 461-370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대왕판교로 400
세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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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ail: davidcheong@chol.com; sccheong@sejong.org   CHEONG, Seong-Chang
Senior Fellow
Inter-Korean Relations Studies Program
The Sejong Institute
400 Daewang Pangyo-ro Sujeong-gu, Seongnam, Kyeonggi Province 461-370, Republic of Korea 


북한 김정일-김정은 권력이양 보다 정확한 분석이 필요


- 북한내 지한파 및 대화추구 엘리트 세력 지원 바람직 -


최근 북한에서 진행되고 있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3남 김정은에의 권력 이양 준비 작업에 대해서 한국내의 일부 식자들 간에는 이해가 부족한 것 같으며 또한 북한 체제의 내구력에 대해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서울의 북한문제에 관한 권위자가 말했다. 2009년 11월 27일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전국대학통일문제 연구소 협의회와 동대학교 통일학연구원이 공동주최한 학술회의에서 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연구실 수석연구위원 정성장 박사는 위와 같이 말하고 그보다는 북한 내에서 지한파와 한국과 협력하려는 엘리트 집단이 성장하도록 지원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다음은 “북한의 정권교체, 체제변화, 한반도 통일의 조건과 전망”이라는 주제로 발표한 정박사의 논문이다.


1994년 7월 8월 김일성 사망 이후 북한 외부의 많은 전문가들은 김정일이 권력을 승계하더라도 카리스마가 부족해 오래가지 못해 실각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전문가들의 ‘희망적 사고’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북한 지도부 내에서 권력투쟁 또는 북한 주민의 소요사태가 발생해서 북한 체제와 국가의 붕괴로 연결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당시 다수의 전문가들은 “북한의 체제변화와 붕괴과정이 궁극적으로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로 이어지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주장들에서 북한에서 페레스트로이카와 같은 개혁 이데올로기가 확산되어 있는지, 북한의 파워 엘리트들 간에 체제개혁 문제와 관련하여 심각한 노선 갈등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북한 군부가 체제변화에 대해 중립적 입장을 취할 것인지, 북한 주민들이 1980년대 중후반 동구 사회주의체제의 국민들처럼 외부세계의 정보를 큰 제약 없이 접할 수 있는지, 주민들에 대한 사회통제가 그들의 집단행동을 가능하게 할 정도로 이완되어 있는지, 주민들이 식량 문제로 봉기를 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의 정치의식이 성숙되어 있는지 등에 대한 체계적이고도 세밀한 분석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2008년 8월 중순 김정일 조선로동당 총비서가 뇌혈관계 이상 증세로 쓰러져 한동안 공개 활동을 중단하자 다시 한국과 미국의 많은 전문가들은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주장들에서도 1990년대 북한붕괴론처럼 개혁 이데올로기와 개혁파 엘리트의 존재와 영향력, 군부의 중립적 태도 등 반드시 핵심적인 변수들에 대한 검토가 실종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 정책이 없었다면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 구소련과 동구사회주의체제의 붕괴라는 대변혁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동구와 소련과는 다르게 아시아에서 중국, 베트남, 북한 사회주의체제의 붕괴가 발생하지 않은 것은 바로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 정책이 이들 국가들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북한 체제․국가의 붕괴와 한반도 통일의 전망 및 조건에 대해 객관적인 지표가 아니라 ‘희망적 사고’에 기초해 판단함으로써 현실과 괴리된 결론에 이른 과거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본인은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체제의 붕괴 경험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9가지의 지표를 만들었습니다.

필자가 시험적으로 설정한 9개의 지표는
① 개혁 이데올로기의 확산, ② 개혁파 엘리트의 집권, ③ 군부의 중립적 태도, ④ 경제난 심화, ⑤ 정보개방, ⑥ 사회통제의 이완, ⑦ 주민의 정치적 각성과 조직화, ⑧ 대남 의존도 심화, ⑨ 주변국의 통일 지지 등입니다. 최근의 북한 급변사태 논의가 북한 체제의 내구력에 대한 과소평가와 김정은 후계체계 구축의 진전 상황에 대한 몰이해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라면, 국력의 불필요한 낭비를 막기 위해서도 조기에 극복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은 현실적으로 북한 지도부 내에서 실용주의적이고 개혁적인 엘리트의 집권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국정부는 장관급회담과 총리회담, 정상회담 등 남북한 고위급 대화와 경제협력의 강화, 사회문화교류의 확대,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을 통해 북한 지도부 내에서 친남파와 대화파가 형성되고 그들의 입지가 강화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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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정권교체, 체제변화, 한반도 통일의 조건과 전망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Ⅳ. 북한 체제․국가 붕괴와 한반도 통일의 조건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에 발생한 동유럽에서의 사회주의체제의 몰락과 동서독 통일 그리고 소련의 해체 등 일련의 사건들은 북한의 ‘붕괴’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일어나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북한경제가 당면한 심각한 경제위기는 다수의 연구자들에게 북한 조기붕괴를 확신하게 하는 배경이 되었다. 그 결과 당시 북한의 변화 전망과 관련하여 수많은 글들이 나왔지만, ‘변화’에 대한 논의에서 변화의 수준(level)을 분명하게 설정하지 않거나, ‘위기’와 ‘붕괴’와 같이 변화와 관련된 개념들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분석이 수반되지 않음으로써 논의가 혼란에 빠지는 경우가 빈번하였으며 현재도 그 같은 문제점이 반복되고 있다. 북한의 변화에 대해 논의할 때 제일 먼저 봉착하게 되는 문제점은 ‘변화’라는 개념의 광의성이다. 변화는 정권교체, 체제붕괴와 국가붕괴 등 매우 다양한 현상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따라서 변화에 대한 논의의 발전을 위해서는 정권, 사회주의체제 및 국가의 어느 수준에서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먼저 분명하게 언급할 필요가 있다. 정권, 사회주의체제 및 국가 수준에서의 변화는 주로 북한 붕괴 또는 존속의 전망과 관련되어 논의되어 왔다. 지금까지 붕괴론의 입장에 선 연구자들이 자주 사용하여 온 ‘붕괴’(collapse)라는 개념을 가지고 이 세 수준에서의 변화를 구별하면, 붕괴를 정권붕괴, 사회주의 체제붕괴, 국가의 붕괴로 나누는 것이 가능하고, 이를 북한에 적용하면 김정일 정권의 붕괴,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붕괴로 분류할 수 있다. ‘정권 붕괴’란 쿠데타나 인민봉기 등에 의한 최고지도자의 급작스러운 교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정권붕괴’는 최고지도자의 사망에 의한 후계자의 ‘권력승계’나 선거에 의한 평화적인 ‘정권교체’와는 구별된다. ‘사회주의체제 붕괴’란 기존 사회주의 정치경제체제의 급작스러운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를 다시 논리적으로 사회주의 정치체제의 붕괴와 경제체제의 붕괴로 나누어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분석의 지나친 세분화와 복잡화를 피하기 위해 ‘사회주의체제 붕괴’를 사회주의 정치체제의 붕괴 및 민주화와 동일시해도 별 무리는 없을 것이다. 북한 사회주의체제의 붕괴를 여기에서는 김정일의 갑작스러운 사망 이후 개혁정권이 들어서서 다당제를 승인하고 자유선거를 실시해서 민주정부가 들어서는 경우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붕괴’란 소련이나 유고슬라비아처럼 하나의 국가가 여러 개의 국가로 분할되거나 동독처럼 서독이라는 다른 국가에 편입되어 소멸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북한의 경우에 적용하면 남북한의 통일에 의해 북한이라는 국가가 대한민국에 편입되어 없어지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북한에서의 정권교체가 우리가 원하는 한반도 통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정권교체가 북한 사회주의체제 붕괴 즉 민주화를 수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김일성 또는 김정일의 유고가 곧 북한체제와 국가붕괴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던 기존 연구들의 대부분은 정권교체가 사회주의체제 붕괴와 국가 붕괴로 이어지기 위한 ‘조건’의 문제를 무시함으로써 북한의 ‘조기 붕괴’라는 비현실적인 전망에 도달했다. 그러므로 1990년대 중반에 북한 조기붕괴론이 범했던 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과연 어떠한 ‘조건’에서 북한 사회주의체제와 국가의 붕괴가 가능할 것인지 동구 사회주의 체제 붕괴의 경험을 참고삼아 고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필자는 ① 개혁 이데올로기의 확산, ② 개혁파 엘리트의 집권, ③ 군부의 중립적 태도, ④ 경제난 심화, ⑤ 정보개방, ⑥ 사회통제의 이완, ⑦ 주민의 정치적 각성과 조직화, ⑧ 대남 의존도 심화, ⑨ 주변국의 통일 지지 등 9개의 지표를 가지고 북한 체제․국가의 붕괴 조건을 분석하고자 한다.


첫째, 북한에서 사회주의체제 또는 국가 붕괴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소련 및 동구에서 사회주의체제 붕괴를 촉진했던 페레스트로이카와 같은 개혁 이데올로기의 확산이 필요하다.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에 동구에서 사회주의체제 붕괴가 연속적으로 일어났던 것은 동구 사회주의체제들이 이념적으로 소련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던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반면 중국과 북한, 베트남 등 아시아의 민족공산주의 체제들은 비록 형성 과정에서는 소련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스탈린 사후에는 소련에서의 이념 변화에 대해 상대적으로 자율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이데올로기가 이들 체제의 엘리트와 국민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결국 동구에서와 같은 사회주의체제 붕괴를 피할 수 있었다. 북한은 1990년대 중반 수백만 명의 아사자가 발생한 후 강성대국이라는 주체사상의 하위 이데올로기를 새롭게 제시하면서 ‘공산주의’의 이상은 포기했으나 여전히 스탈린식 사회주의 이념을 고수하면서 정치개혁을 거부하고 있다.


둘째, 북한에서 사회주의체제 또는 국가 붕괴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급진적 개혁파가 스탈린식 사회주의 이념을 고수하려는 보수파와의 권력투쟁에서 승리하여 권력을 쟁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에는 ‘개혁파’ 그룹을 형성할 수 있는 세력들은 이미 1950년대 중후반 정치무대에서 사라졌다. 1956년 2월 제20차 소련공산당 대회에서 흐루시초프의 스탈린 비판 이후 대부분의 동유럽 국가들은 탈스탈린화의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당내에서 집단지도체제를 복원시켰다. 그 결과 당내 다양한 세력들이 공존하게 되었으며, 개혁성향의 인사들이 1980년대 중후반 사회주의체제의 붕괴를 주도할 수 있었다. 반면 북한에서는 1956년 ‘8월종파사건’과 1967년 갑산파 숙청을 통해 당내 비주류 세력이 몰락하게 되었고, 1930년대 만주에서 김일성과 항일무장투쟁에 참여했던 인사들과 그들의 2세들이 북한 지도부의 핵심을 구성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1980년대 중후반 동유럽과 소련에서 사회주의체제가 붕괴되는 동안에도 북한 지도부 내에서 의미 있는 정치적 균열은 발생하지 않았다. 북한 지도부의 이 같은 인적 구성을 고려해 봤을 때 앞으로도 장기간 동안 북한에서 ‘탈(脫)김일성·김정일화’와 체제개혁은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셋째, 북한에서 체제 붕괴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개혁파’가 권력을 장악할 경우 군부가 중립적 입장을 취하거나 체제 개혁을 지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 군부가 체제 유지에 가장 큰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고 지도부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군부가 체제붕괴를 방치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북한 사회주의체제 붕괴의 조건
 



북한 ‘국가 붕괴’와 한반도 통일의 조건 




현재의 북한 엘리트 구성에 비추어볼 때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 조선로동당 지도부 내에 고르바초프와 같은 급진적 개혁파가 다수파를 형성하거나 헤게모니를 장악할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판단된다. 김정일의 3남 김정은은 김정일로부터 권력을 물려받은 ‘태생적 한계’ 때문에 급진적 체제개혁을 추진하지는 못할 것이다. 만약 차기 지도자가 급진적 개혁을 시도하려고 한다면 ‘선군정치’로 인해 과대성장한 군부가 이에 저항할 가능성이 높다.


일부 전문가들은 동독의 경우처럼 북한도 ‘정권 붕괴’가 ‘체제 붕괴’로 이어지고 ‘국가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을 지적하지만, 동서독의 경우에는 남북한의 경우처럼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지 않았기 때문에 정치통합 전에 군사통합에 대한 합의에 도달할 수 있었다. 반면 남북한은 북한의 남침으로 발생한 한국전쟁이 만들어놓은 적대적인 감정이 양국의 군부에 자리 잡고 있고, 더욱이 북한 군부는 전쟁 발발의 책임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 북한 군부가 ‘정치적 공백’에 이어 ‘군사적 공백’까지 허용하고, 남한과 미국 군대가 북한에 진주하는 것을 좌시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하겠다.


넷째, 북한의 조기붕괴를 확신하는 다수의 전문가들은 북한의 경제난을 매우 중요한 근거의 하나로 제시하지만, 1990년대 중후반 수백만이 아사하는 극단적인 상황속에서도 체제유지에 성공한 조선로동당 지도부가 그 때보다는 상대적으로 나은 현재의 경제 상황 하에서 체제붕괴 및 국가븡괴를 맞이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경제난이 체제붕괴를 유발하기 위해서는 반체제 세력이 경제난의 책임을 북한 지도부에 돌리며 주민들을 효과적으로 정치투쟁에 동원할 수 있어야 하지만 현재 그 같은 세력이나 환경은 조성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다섯째, 북한에서 체제붕괴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소련에서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이 추진했던 글라스노스트와 같은 정보개방 정책을 북한 지도부가 채택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다수의 북한 주민들이 은밀하게 남한의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남한 문화를 동경하고 있지만, 북한 주민들이 지도부의 각종 매체를 통한 선전선동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이 정도의 문화적 접촉만으로는 반체제 의식을 형성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동독의 경우 주민들이 민주화와 동서독 통일을 위해 봉기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평소에 자유롭게 서독 방송을 청취할 수 있었으며 소련이 민주화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북한에서 미래에 민주화가 이루어진 후 일반 주민들이 남한 방송을 자유롭게 청취할 수 있게 된다면, 그 때에야 비로소 주민들은 남북한의 신속한 통일을 위해 북한 정부가 남한과의 협상에 나서도록 거리에 나서게 될 것이다.


여섯째, 탈스탈린화 과정을 거쳐 북한 주민들에 대한 사회적 통제가 완화되고, 집회․시위․결사의 자유 등이 어느 정도 보장되어야 한다. 현재의 북한에서처럼 엘리트와 주민들이 당과 국가안전보위부, 인민보안성, 인민반 등에 의해 이중삼중으로 통제받고 있고, 정치적 반대자에 대해서는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과 친척까지 강제수용소로 보내지는 극심한 탄압 상황에서는 주민들의 정치적 집단행동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일곱째, 주민들의 정치의식이 성장하여 노동당 독재 폐지를 요구하고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사회세력이 형성되어야 한다. 그런데 동구와 소련의 경우 시민사회세력이 체제붕괴를 가져왔다기보다는 공산당 지도부에서 정치적 개혁과 정보개방 정책을 추진하면서 시민사회세력이 성장하여 결국 체제변화를 요구하는 방향으로까지 나아갔다. 북한의 경우 동구국가들과는 다르게 사회주의화 이전에 민주선거의 경험조차 없고,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주민들의 인식이 매우 빈약한 실정이다. 그리고 사회주의적 집단주의 문화에 충효를 강조하는 봉건적 유교문화가 결합되어 주민들의 정치의식이 상당한 정도로 신민화(臣民化)되어 있다. 결국 북한 지도부가 정치개혁과 정보개방 정책을 추진하여 북한 주민들의 정치의식 수준이 크게 높아지기 전까지 주민들이 체제개혁을 요구하며 거리에 나서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여덟째, 대남 의존도 심화가 체제붕괴와 국가붕괴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북한 주민이 남한과의 협력 강화로 자신들의 삶이 개선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행동에 나서야 할 것이다. 비록 다수의 일반 북한 주민들에게 개성공단의 한국 기업이 가장 선호하는 직장이 되고 있기는 하지만, 북한 주민의 대남의존 심리가 정치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제2, 제3의 개성공단이 만들어져 평양주민들에게도 큰 관심을 끌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아홉째, 주변국의 대북정책이 북한 체제붕괴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북한의 ‘생명줄’을 쥐고 있는 중국이 체제개혁을 강력하게 요구하거나 핵포기 후 북한의 국제사회 편입이 이루어져 체제개혁 압력이 증폭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중국은 대북 영향력 상실을 우려해 북한에게 체제개혁을 강력하게 요구하지 못하고 있으며, 중국 또한 정치적으로는 공산당 일당 독재를 고수하고 있으므로 북한에 개혁을 요구한다고 해도 그것이 경제 분야에 그칠 수밖에 없다. 핵 문제도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국제사회에 편입되기까지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기 때문에 당분간은 체제개혁 압력도 적을 수밖에 없다.


북한의 체제붕괴가 국가붕괴 및 남북한 통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동독에 대해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소련이 동서독 통일을 용인한 것처럼 중국이 남북한 통일에 협력적 태도를 취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남북한이 평화적으로 통일하는 경우 반대하지는 않겠지만, 세계적 수준에서의 미․중 경쟁구도와 남북한 통일 후 중국내 조선족의 분리주의 운동 가능성을 우려해 한․중 관계가 매우 우호적이지 않는 한 한국 주도의 통일에 협력적 태도를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동독이 소련에 군사적으로 의존적이었던 것과는 다르게, 북한이 중국에 대해 군사적으로 독립적이기 때문에 북한 지도부와 주민이 남한과의 통일을 원한다면 중국이 이를 막을 수단은 없을 것이다.


이처럼 ① 개혁 이데올로기의 확산, ② 개혁파 엘리트의 집권, ③ 군부의 중립적 태도 등 아홉 가지 지표를 가지고 고찰한 결과 북한 체제와 국가의 붕괴 조건은 아직 매우 미성숙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김정일 이후 김정은 정권 또는 다른 지도부가 북․미 관계 정상화와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후 선군정치에서 탈피하여 군대를 감축하고 등소평식 개혁과 개방을 추진한다면, 북한 주민의 정치의식이 점차적으로 성장하여 장기적으로 사회주의체제의 붕괴로 나아갈 수 있는 조건이 성숙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현 시점에서 북한 체제 또는 붕괴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매우 성급한 견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한국정부는 비현실적인 북한 ‘급변사태’ 발생을 기대하며 북한과의 대화를 계속 회피할 것이 아니라, 북한과의 고위급 대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경제협력을 강화함으로써 남북한이 ‘평화공존과 화해․협력의 모색 단계’로부터 ‘당국간 대화의 제도화 단계’ → ‘부분적(느슨한) 연합 단계’ → ‘전면적(긴밀한) 연합 단계’를 거쳐 궁극적으로 북한이 민주화되면 통일의 단계인 ‘정치공동체 형성(연방정부 창설) 단계’와 ‘경제․사회문화․군사통합 완성 단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중장기적인 통일전략 하에 대북 영향력 확대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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