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칼럼]이제 ‘깜깜이 입찰’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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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칼럼]이제 ‘깜깜이 입찰’ 사라진다
  • 제임스 김 기자
  • 승인 2017.02.01 2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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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포스트 제암스 김 기자]연간 공공조달 규모는 120조 원 정도다. 36조 원은 공공기관들이 조달청에 위탁하여 계약하고, 나머지는 스스로 한다. 조달 정책을 운용하다보면 조달청이 계약하는 것만 봐서는 모자랄 때가 있다. 그래서 필자는 나라장터에서 이뤄지는 거래도 종종 살펴본다.

안타까운 사례가 있었다. 어느 기관이 발주한 공사와 얽힌 일이다. 한 건설업체가 낙찰 기회를 거머쥐었다. 그런데 계약은 성사되지 않았다. 이 업체 관계자는 계약에 앞서 설계서를 살펴보러 발주기관을 방문했다. 그제야 발주기관이 공사비를 38%나 깎은 것을 알게 됐다. 이 업체 대표는 공사를 포기할지, 손실을 감수하고라도 진행할지 기로에 섰을 것이다. 포기하자니 6개월 가까이 공공공사 참여 길이 막힐 수 있고, 손실을 감내하자니 메꿀 길이 막막했을 것이다. 진퇴양난이다.

정부입찰에서 이런 일이 가끔 벌어진다. 잘못은 어디에 있을까? 공사비를 낮게 잡은 정부만의 잘못일까? 보통 판매자와 구매자가 가진 정보는 서로 비대칭적이다. 어떤 정보는 상대방이 알 수 없거나, 알아내는데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정보 비대칭성이 작아야 거래비용이 줄어들고, 시장은 효율적으로 작동한다.

세상에 같은 공사는 없다. 공사마다 내용이 다름은 당연하고 기관마다 공사비 책정 수준도 다를 수 있다. 물론 앞의 사례는 극단적인 경우다. 이런 것들은 입찰공고에 잘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건설업체는 발주기관을 찾아가 설계도서를 미리 보고, 현장 여건도 살펴야 한다. 이렇게 발주자만 가진 정보를 파악하는 과정을 거쳐 원가를 산출하고 입찰 참여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마땅하다. 국가계약법령은 이를 입찰자의 의무로 정하고 있고,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책임은 건설업체가 져야 한다.

이것은 발주기관에 치우친 생각이다. 입찰참여자 입장도 살펴보자. 나라장터 등록 공공기관은 4만 여개로, 온 나라에 흩어져 있다. 매일 평균 2000건의 입찰공고가 쏟아진다. 공고를 놓치지 않고 챙기는 것만도 기업에게 상당한 일이다. 입맛에 맞는 것을 골라내기는 더욱 만만치 않다. 건설업체는 당연히 이윤이 남는 사업에만 참여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자면 관심 사업의 설계도서를 검토해야 한다. 그런데 발주기관을 일일이 찾아가는 것은 부담이 크다. 중소건설업체에게 이 비용은 더욱 크게 느껴질 것이다. 일감을 따고 보자는 생각으로 깜깜속 입찰에 나서고, 인용한 사례와 같은 사단이 나는 경우도 생긴다.

이런 불필요한 거래비용은 정부가 나서 줄여야 한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조달 관련 정보는 최대한 공개해야 한다. 중고물품, 개인 간 직거래 시장은 정보의 비대칭성이 높아 ‘레몬마켓’으로 비하됐었다. 근래 정보기술이 발달하면서 상품 정보를 쉽게 구하고, 판매자와 구매자에 대한 입소문을 상호 교류할 수 있게 됐다. 정보가 풍부해지고 믿고 거래할 수 있게 되면서 시장규모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거래에 있어 정보 공개·공유는 이만큼 중요하다.

조달청은 정부입찰에서 정보를 쉽게 공유하는 제도를 구현해 왔다. 일찍이 구매 대상 물품의 규격을 미리 나라장터에 공개하는 제도를 운영해 왔고, 지난 2015년에는 모든 공공기관이 이행하도록 했다.

지난 연말에는 시설공사 설계도서를 온라인으로 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제 건설업체는 발주기관을 일일이 다니며 설계도서를 열람하지 않아도 된다. 사무실에 앉아 나라장터에 접속, 설계도서를 내려 받으면 된다.

이렇게 되면 입찰 참여 비용이 줄어들고, 더불어 깜깜속 입찰로 인한 분쟁도 줄어둘 것으로 본다. ‘새만금지구 산업단지 6공구 매립공사’부터 이 시스템을 적용했다. 대형공사에 우선 시행하고 있고, 머지않아 최대 수혜자인 중소기업이 주로 참여하는 작은 공사에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설계서 e-열람 시스템’이 건설시장의 거래비용을 줄이고, 건설업체들이 기업 활동하기에 더 좋은 환경을 만드는데 일조할 것으로 기대한다.

글쓴이: 임헌억 조달청 토목환경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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