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학교, 직장에서의 사회화 실패”, 토막살인으로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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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학교, 직장에서의 사회화 실패”, 토막살인으로 이어져
  • 김영목 기자
  • 승인 2016.05.06 17: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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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행 후 태연히 영화감상…"자포자기•현실도피 심리인듯"

[코리아포스트 김영목 기자] "청소를 자주 시켰다. 나이가 열 살 어리다고 평소 무시했다."

경기 안산 대부도 토막살인 피의자 조모(30)씨가 경찰에 진술한 범행 동기다.

두 달이나 함께 살던 열 살 차이 선배를 잔인하게 살해한 뒤 시신을 토막내 유기한 범죄치곤, 그 동기가 선뜻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사소하다.

하지만, 분노를 참지 못해 잔혹한 범죄로 이어지는 사건이 최근 잇따르고 있다.

조씨는 올 1월 인천의 한 여관에서 카운터 일을 보면서 함께 근무하게 된 최모(40)씨를 알게 됐다.

자신보다 열 살 많지만, 말이 잘 통했고 생활비도 아낄 수 있어 함께 살기로 했다.

1월부터 3월 말까지 두 달 넘게 함께 살아온 그는 평소 최씨가 자신이 어리다고 무시하고 자주 청소를 시켰다고 진술했다.

그로 인해 분노가 쌓이고, 사소한 말다툼 끝에 무참히 폭행하고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고 밝혔다.

조씨는 시신을 화장실에 감춰놓고 10여일간 조금씩 훼손해 상•하반신을 토막낸 뒤, 지난달 26일 밤 렌터카에 시신을 싣고 대부도 2곳에 차례로 유기했다.

시신은 이불로 덮은 후 마대에 넣어 숨기려 했지만 유기 장소가 도로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어서 금세 발각됐다.

조씨는 범죄행각을 감추기 위해 시신을 토막내 유기하기까지 했지만, 정작 경찰이 들이닥칠때까지 도주하지도 않은 채 정상적으로 회사에 나가고, 집에 오면 TV 영화채널에 빠져 있었다.

그는 경찰에서 "집에서는 TV로 영화를 보느라 뉴스를 챙겨보지 않아 시신이 발견됐는지 몰랐다"고 진술했다.

수시본부의 한 형사는 "피의자는 우발적으로 범행한 뒤엔 모든 걸 내려놓고, 현실도피하는 심정으로 영화에 빠져 지냈던 것 같다"며 "상식적으로는 범행을 감추기 위해 시신을 훼손해 유기한 피의자의 경우 범행이 발각되진 않았는지 수시로 알아볼텐데 조씨는 아직 그런 행동을 한 근거가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창무 중앙대 산업보안학과 교수(전 한국경찰연구학회장)는 "시신을 토막내 차를 빌린 뒤 유기할 정도로 범행을 감추려한 피의자가 뉴스를 챙겨보지 않았다는 것은 앞뒤가 안맞는 진술이어서 진위를 좀 더 조사해봐야 할 것 같다"고 전제한뒤, "만일 그 진술이 사실이라면, 피의자는 범죄행위와 그로인한 괴로움을 스스로 부정하고자 하는 차원에서 현실도피와 같은 심리로 영화시청에 빠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지난 2일 새벽 대전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는 10대 청소년이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무참히 폭행하는 사건이 있었다.

A(16)군은 단지 후배와 말다툼한 뒤 화가 난다는 이유로 아파트 화단에서 벽돌을 주워 가방안에 넣었다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난 주민 B(28•여)씨를 벽돌로 마구 때렸다.

A군은 B씨의 저항에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까지 폭행을 멈추지 않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서울에서는 여자친구인 10대 여성이 결별을 선언했다는 이유로 이 여성과 동성 친구 등 2명을 살해한 30대 남성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같은해 충북 청주에서는 취업에 실패해 화가 난다는 이유로 길가던 80대 노인을 아무 이유없이 폭행해 숨지게 한 40대 남성이 징역 5년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가정과 학교, 직장 등에서 제대로 사회화되지 못한 구성원들이 늘면서 분노 조절에 실패해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한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분노를 참는 주된 이유는 가족이나 동료 등 '소중한 누군가를 실망시키지 말아야지'하는 심리에서 비롯되는데, 가정이나 직장 등 제대로된 사회화를 이루지 못한 경우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범죄를 저지는 일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분노는 가정이나 학교, 직장 등 사회화를 통해 훈련받기 마련인데 하지만 최근 가정 해체, 공교육 책임방기, 실업 등으로 사회화에 실패한 구성원들이 늘면서 분노로 인한 잔혹 범죄가 잇따르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창무 교수도 "현대 사회는 초고속 인터넷, 휴대전화 보급 등으로 소통의 속도가 점차 빨라지면서 사회 구성원들이 참고 기다리는 훈련이 덜돼 분노를 삭히지 않고 행동으로 표출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며 "범행 동기인 '분노' 조절을 위해 양극화 해소와 건강한 분노 해소법 등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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